Page 33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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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의 선정은 깨달음의 전제조건


               어떻게 생각해 봐도 선지식의 두드림에 호응하여 바로 깨쳤던 사람들은

             이미 준비가 된 이들이었다. 부처님의 첫 제자였던 교진여 등의 다섯 비구

             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부처님을 따라 모든 수행을 함께 하던 당대 최고
             의 수행자들이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각오까지 되어 있었
             다. 다만 이들은 일종의 공적주의에 빠져 있었다. 부처님의 중도 가르침은

             한쪽으로 치우쳤던 이들의 관점을 교정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부처님

             의 법문을 듣고 즉시 깨침을 얻어 ‘집제集諦가 그대로 멸제滅諦’라는 중도의
             선언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경우라고 안 그럴까? 조주선사를 찾아왔던 엄양존자嚴陽尊者는 이

             미 무심의 고요함을 확보한 수준 높은 수행자였다. 그래서 “한 물건도 가

             지고 오지 않았을 때 어떻느냐?”고 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조주선사
             는 “내려 놓으라[放下著]”고 대답한다. 그 무심의 고요함을 자부하는 마지
             막 마음까지 내려놓으라는 뜻이었다.

               엄양존자는 다시 질문을 한다. “모두 내려놓아 한 물건도 없는데 다시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조주선사는 다시 두드린다.
             “그렇다면 다시 메고 가라.” 그에게 고요함을 자부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
             을 재차 지적한 것이다. 이에 엄양존자는 크게 깨닫는다. 같은 차원에서 운

             문선사는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허물이 없지 않겠느냐?”고 질문

             한 수행자에게 “수미산”이라고 대답했다. 무심의 고요를 지키는 허물이 그
             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러한 해석과 이해에 큰 문제는 없다. 다만 공안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

             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깨달음의 지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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