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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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만년설에 덮여 있는 수미산(카일라스).
란 무심에 안주하는 마음마저 내려놓을 때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선사의 한마디는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무심에 도달한 수행자를 내몰
아 마지막 관문을 뚫고 나가도록 하는 채찍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은 차원에 도달했는지의 여부다.
물론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이러한 드문 경계는 오랜 수행의 결과일
수도 있고 순간적 몰입의 결과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 해도 그것이 앎
과 이해의 차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달마스님은 말한다. “마음이 있으
면 무수한 겁을 거쳐도 범부로 남을 것이고, 마음이 없으면 찰나 간에 바
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소멸해야 하는 마음에는 시비분별을 내용으로 하는 일체의 마음
이 포함된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저열한 마음도 소멸해야 하는 마
음이고, 보리를 추구하는 마음과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고상한 마음도 결
국은 내려놓아야 하는 마음이다. 나아가 제8아뢰야식의 미세한 흐름조차
끊어내야 하는 마음의 잔재이다.
성철스님은 생각의 파도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아뢰야식 차원의 무심
을 ‘가짜 무심[假無心]’이라고 부른다. 납에 금을 입히면 빛과 무게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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