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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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은해사 보화루.
중건기」(1862)에 의하면, 이 당시에 추사선생이 ‘은해사銀海寺’와 ‘대웅전大雄
殿’, ‘불광佛光’과 같은 편액을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은해사연혁변」(1879)에
는 문액門額의 ‘은해사’ 현판, 종각에 걸린 ‘보화루’ 현판, 불당의 ‘대웅전’ 현
판, 노전의 ‘일로향각一露香閣’ 현판은 추사선생이 쓴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글씨들은 추사선생과 오랜 교분을 가지고 있던 혼허화상과의 인연에
기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 추사선생은 아버지 김노경金魯敬(1766~1837) 선
생이 경상도 관찰사로 경상감영에서 근무하던 1817년에서 1818년의 기간
에 경주와 대구 인근의 경상도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1818년에 추사
선생이 해인사의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건할 때 그 상량문을 지은 것은 이
런 인연에 기한다.
1848년 12월 헌종憲宗(재위 1834-1849)은 추사선생을 제주도의 유배에서
해제시켰다. 55세에 시작된 8년 3개월간의 기나긴 위리안치圍籬安置의 형
벌이 끝났다. 추사선생은 해를 넘겨 1849년 2월에 제주를 출발하여 3월에
예산 본가를 들러 용산 본가로 돌아온 후 마포에 집을 구하여 식솔들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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