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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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보화루를 통해 본 은해사 전경.


          께 기거를 하고 있었다. 이 당시에 이미 유배생활로 심신이 피폐해진 60
          중반의 나이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아껴준 헌종이 있었기에 새로운 삶
          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아버지 김노경 선생의 명예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졌던 시기였다. 은해사 편액들은 이 시기에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추사선생은 서울에 머물고 1850년 봄에는 호남에 다녀오기도 했는
          데, 영남지역으로 행보한 기록은 없다. 글씨는 서울에서 써서 은해사로 보
          낸 것 같다.

           마포의 집에서 가족들과 소박하게 지낼 때는 글씨를 쓰고 차를 마시며

          시를 짓는 삶으로 다시 밝은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심경도 있었기에, 집
          의 이름도 단계 벼루로 글씨를 쓰고 대나무 화로에 차를 끓이는 일상 속에
          서 시를 지으며 산다는 심경을 담아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이라고 했

          다. 고예서체古隸書體로 쓴 이 글씨는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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