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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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문득 보니 심부름하는 행자行者가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간 후에 불렀습니다.
“이놈아, 스님들 법담하는데 왜 웃어?”
“허허, 눈멀었습니다. 정전백수자는 그런 것이 아니니, 제 말을 들어보
십시오.”
그러고는 이런 게송을 읊었습니다.
흰 토끼가 몸을 비켜 옛 길을 가니
눈 푸른 매가 언뜻 보고 토끼를 낚아 가네.
뒤쫓아온 사냥개는 이것을 모르고
공연히 나무만 안고 빙빙 도는도다.
‘뜰 앞의 잣나무’라 할 때 그 뜻은 비유하자면 ‘토끼’에 있지 잣나무에 있
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 눈 뜬 매는 토끼를 잡아가 버리고 멍텅구
리 개는 ‘잣나무’라고 하니 나무만 안고 빙빙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
밑에 가서 천년 만년 돌아봐야 그 뜻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
금 전에 말했듯이 ‘화두는 암호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생각나
는 대로 이리저리 해석할 수 없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두의 문자에 현혹되지 말라
화두에 대해 또 좋은 법문이 있습니다. 불감혜근佛鑑慧懃(1059~1117) 스님
의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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