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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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어떤 것이’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뭐였는가를 자꾸 생각하다 보면 소
였는가, 개였는가, 하는 그런 생각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뭐였
던가?”에 집중하지 말고 “어떤 것이 나의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인가?” 하
면서 ‘어떤 것’이라고 하는, 이 ‘여하시如何是’를 기억해야 합니다.
대나무 소리에 깨달은 향엄선사
예전에 향엄香嚴(?~898)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본래 백장百丈
(749~814) 스님 제자였습니다. 백장스님이 입적하시고 나서 같은 백장스님
제자인 위산潙山(771~853) 스님한테 가 있는데, 향엄스님의 총명함과 말재
주에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 위산스님이 가만히 보니 아
무것도 공부가 없는데도 그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향엄스님
을 불렀습니다.
“네가 총명이 제일이고 변재辯才가 제일이어서 천하제일인데, 내가 물으
면 대답 못 하는 게 뭐 있겠는가? 그래도 내가 한 가지 물을 테니 이걸 한
번 대답해 봐라.” 하고는 본래면목을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너의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냐?”
향엄스님이 다른 것은 다 물어도 대답을 했는데 이 질문에서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막혀버렸습니다. 향엄스님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위산스님이나 나나 사람은 똑같은데 위산스님은 큰스님 되어서 큰소리
탕탕 치니, 나는 이제 어디 가서 굶어 죽을지라도 다시는 선방 밥 안 먹고
어디 토굴에 들어앉아 화두나 얼른 해서 공부를 성취해서 나오리라.”
그러고는 도망치듯 나와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을 전부 다 찾아봤습
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어떤 것이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인가?”에 대한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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