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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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쇄한 언어문자의 학습에 쓰는 시간과 정력을 한곳에 집중하자는 것이
             선종이다. 목숨까지 쥐어짠 하나의 힘으로 지금 당장 선악조차 생각하지
             않는 본성의 자리에 돌아가자는 것이 선종이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수

             행의 지위를 논하고 스승들의 우열을 평하는 평론가가 되는 함정에 빠진

             다면 그 자체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현요정편玄要正偏의 동일성




               성철스님이 정안종사들의 가풍을 정리하면서 숫자에 대한 일체의 관심
             을 차단하는 전략을 취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3현3요에서 3을
             삭제하고 조동종의 정편5위에서 5를 삭제하여 현요정편玄要正偏의 큰 동일

             성만을 남긴다. 5가의 특징적 종풍에 대한 검토를 하면서 장의 제목을 현

             요정편으로 삼은 이유이다.
               여기에서 성철스님은 5가의 다양한 종풍이 백화제방으로 피어난 중도
             의 꽃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떻게 보아도 정안종사의 가르침은 본성

             과 현상의 통일성[性相一如], 이치와 일의 원융성[理事圓融], 존재와 공성의

             무차별성[色卽是空, 空卽是色], 부정과 긍정의 동시성[雙遮雙照]을 그려내는 말
             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5가의 우열을 논한다면 그 스스
             로 자신이 시비선악의 분별 집착에 빠져 있음을 고백하는 일이 된다. 그러

             므로 오로지 수행에 매진하여 스스로 철저하게 밝아져야 한다. 그때 5가

             의 종풍이 한 집안의 일임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도 말했다.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져 있다[吾道一以貫之].” 증자曾
             子는 이에 대해 충忠이니 서恕니 나누어 해석했지만 그게 공자의 뜻이겠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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