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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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성철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내 말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도오선사는
             “생각을 거치면 잘못”이라는 고함으로 말을 따라가려는 숭신선사를 가로
             막았다.

               이처럼 정안종사는 그 말을 가지고 기존의 언어적 틀을 깨는 동시에 그

             것이 새로운 이해의 틀을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십분 주의를 기울인다. 아
             니,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은 옳지 않다. 언어도단의 차원에서 내놓는 선사
             의 말은 항상 언어와 이해의 틀을 깨뜨리면서 태어난다. 그렇게 하여 어떠

             한 해석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쇄락한 언구들이 출현한다.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無]”고 대답했다.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조주스님의 “없다”는 대답은 불교의 교리와 충돌한다. 그렇다고 조주의 옛

             부처님[趙州古佛]으로 불렸던 정안종사가 틀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그리

             하여 이 한마디 말은 진퇴유곡을 선물한다. 이해를 통해 기억의 창고로 넘
             겨버릴 수도 없고 의미가 없다고 내다버릴 수도 없다. 목에 걸린 밤송이와
             같아서 삼킬 수도 없고 토할 수도 없다.

               정안종사들의 말은 이렇게 의미의 그물에 걸리지도 않고 무의미의 늪에

             빠지지도 않는다. 여기에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수사학적 장
             치들이 시설된다. 그것은 선사의 개성과 학인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
             으로 나타난다. 그 각각의 상황이 다르므로 선사들이 내놓는 가르침의 언

             어들은 언뜻 보기에 천차만별의 다양성을 갖는다. 그중에 특별히 효과를

             본 방법들이 제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일종의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5가
             의 종풍이 바로 그것이다.
               임제종은 일체의 틀을 부수는 압도적 기세로 유명했고, 조동종은 언어

             와 행동의 치밀한 조화에 의한 훈습을 중시했다. 운문종은 이해하고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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