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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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신: 제가 여기에 와서 아직 마음의 요체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요체를 가르쳐 주십시오.
도오: 네가 여기 온 이후 이제까지 마음의 요체를 가르쳐 주지 않
은 때가 없었다.
숭신: 어디에서 마음의 요체를 보여주었단 말씀이십니까?
도오: 네가 차를 올리면 나는 차를 마셨다. 네가 밥을 올리면 내가
밥을 받았다. 네가 절을 하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주
지 않은 곳이 어디냐?
(숭신이 고개를 숙이고 그 뜻을 생각하자)
도오: 보려면 당장 이대로 보아야지 생각을 거치면 잘못이 생긴다.
학인은 끝없이 무엇인가 확실한 하나를 내놓으라 재촉한다. 그런데 눈
앞의 만사만물 외에 내놓을 것이 없는 것이 정안종사의 살림이다. 그래서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그 ‘마음의 요체’를 남김없이 드러낸다. 그럼에도 무
엇인가 특별함을 찾는 학인은 좀체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때 어떻게 할 것
인가? 정안종사는 구업口業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마지못해 한마디 한다.
그것은 우주법계 전체를 담보로 하는 일종의 약속어음 같은 것이다. 크다
면 크고 허무하다면 허무하다.
선종 오가의 가풍
학인이 이 증서를 받아 마음의 요체를 수령한다면 이 거래는 완성되겠
지만 대부분 그러지 못한다. 종이쪽지 자체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기 때문
이다. 그래서 정안종사는 이미 뱉어놓은 말을 다시 부정하는 말을 쏟아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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