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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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라 한동안 정진기도를 올리고 싶은 생각이 났어요.
             출가해서 근 십년 가까이 부전 책임도 하고 여러 가지 하면서 남의 기도는
             많이 했지요. 그러나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을 찾아야 하는 분기점에 왔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적멸보궁에서 이번에는 진짜 내 기도랍시고 해 봐

             야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중대에는 응담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원주로 계시면서 적멸보궁도
             관리했어요. 그때는 달랑 두 칸 요사채뿐이었어요. 노장한테 인사를 드렸

             지요. 여기서 한 20일 기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나는 그동안 여러 절

             을 다니면서 받은 차비가 있고 곳곳에 내 강의를 들었던 스님들이 챙겨준
             봉투도 꽤 많았어요. 응담스님께 “내게는 재산이 이것뿐인데 20일 동안 기
             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봉투를 모두 내놓았어요. 내 말을

             듣더니 응담스님이 갑자기 크게 웃으시더라구요. 이어서 “해 보시오. 열심

             히 하시오.” 그러셨어요.
               음력 5월이니까 산중의 새벽은 좀 춥긴 한데 훌렁 벗고 물 뒤집어쓰면
             서 목욕을 했어요. 기도에 앞서 우선 몸을 정결하게 하지요. 보궁에 올

             라가서 쇳송하고, 목탁석하고 예불 모시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누가 기

             도법을 일러주거나 규칙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독창적으로 생각해
             냈어요.
               1시간 동안 목탁을 치면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해요. 이후 1시간은 절을

             해요. 몇 배를 하는지는 세지 않고, 1시간 꼬박 절을 하는 겁니다. 법당 안

             에 둥그런 괘종시계가 있더라구요.  이렇게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째는 앉
             아서 화두 들고 참선 정진을 합니다. 새벽부터 낮이나 밤이나 이 세 가지
             를 계속 번갈아 합니다. 하루 한 끼 점심공양만 했어요. 그것도 많이 먹지

             않았어요. 그저 죽지 않을 만큼, 기도하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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