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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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고승들을 배출한 백련사
조선시대 후기에 백련사에 주석하며 강백講伯으로 이름을 날린 아암혜
장兒庵惠藏(1772~1811) 화상은, 백제百濟 최초의 절은 침류왕枕流王(재위: 384~
385) 원년인 384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晉에서 백
제로 건너와 경기도 한산漢山(지금의 광주廣州)에 마련한 난야蘭若이고, 법
왕法王(재위: 599~600) 2년인 600년에 사비하泗沘河(지금의 부여)에 왕흥사王
興寺가 지어지고 승려 30인이 출가하면서 비로소 한반도 남쪽에 처음 절이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호남의 사찰은 모두 그 이후에 지어졌기 때
문에 어느 때 누가 백련사를 창건한 것인지는 확정할 수는 없으나 통일신
라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백련사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창건되었다가 어느 때부터
사세가 기울어지고 당우들이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오다가 고려시대 중기
1211년에 와서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1163~1245) 화상이 이 터에 절을
크게 중창하여 백련사白蓮社라고 하고 천태종天台宗의 종풍을 널리 펼치면
서 비로소 대가람大伽藍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20년 동안 백련사의 8
국사가 배출되는 기틀이 이때 마련되었다. 혜장화상까지 하면 11국사가 나
온 셈이다.
요세 화상에 대해서는 최자崔滋(1188~1260) 선생이 지은 「만덕산백련사원
묘국사비명병서萬德山白蓮社圓妙國師碑銘並書」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최자 선
생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충崔冲(984~1068)의 6대손으로 고려 무신
정권 시기에 문벌을 이루었던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문신이었는데 불교를
적극 성원하였다. 최씨 무신정권에 봉사한 이규보李奎報(1168~ 1241)도 최자
선생을 당대 최고의 인물로 꼽았다. 1259년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였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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