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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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법상大梅法常(752~839), 마곡보철, 불광여만 등 100여 명이 넘는 빼어
             난 선장禪匠들이 각처에서 종풍을 일으키며 가히 마조선馬祖禪 즉 홍주종洪
             州宗이 천하에 풍미하던 때였으니, 무염화상이 어찌 한 사람만 만나 공부

             했겠는가.

               그건 그렇다 치고 무염선사의 행적으로 보건대, 839년에 무염선사가 만
             덕사를 창건하였다고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부합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만덕사지』의 편찬에서 전체 감수를 맡은 다산선생도 무염선사를 백련사

             와 연관시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아무튼 백련사는 창건된 후에는 만덕사萬德寺로 부르다가 고려시대에 와
             서는 ‘백련사白蓮社’라고 했고, 조선시대에는 다시 만덕사라고 했다. 오늘
             날에는 ‘백련사白蓮寺’라고 부르고 있다.

               839년은 장보고張保皐(?~846)의 힘을 빌어 민애왕閔哀王(김명金明, 재위:

             838~839)을 죽이고 왕이 된 신무왕神武王(김우징金祐徵, 재위: 839. 1~7.)이 6개
             월 만에 병사하자 그의 아들 문성왕文聖王(김경응金慶膺, 재위: 839~857)이 그

             뒤를 이어 임금으로 즉위한 해이다. 이 해에 문성왕은 장보고 즉 궁복弓
             福이 자기 아버지를 도와 조정의 적을 없애 주었다고 격찬하고 그를 진해

             장군鎭海將軍에 임명하고 장복章服도 하사하였다.
               840년에는 당나라 문종文宗(재위: 826~840) 황제가 홍려시鴻臚寺에 조칙
             을 내려 신라에서 볼모로 와 있던 사람들과 10년의 연한이 만료한 숙위 학

             생 등 총 105명을 신라로 돌려보내는 조치를 하였다. 3년 전인 837년에는

             흥덕왕興德王(재위: 826~836) 11년에 사은사謝恩使 겸 숙위宿衛로 당나라 조
             정으로 간 둘째 왕자 김의종金義琮(?~?)이 신라로 귀국하였는데, 그 편에
             원감현욱圓鑑玄昱(787~868, 도당 유학: 824~837) 대사도 함께 신라의 무주武州

             회진會津에 도착하였다. 현욱대사는 당나라에서 마조선사의 제자인 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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