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4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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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강화도로 천도하는 것보다 화친하는 것이 옳
다는 입장에 섰다. 강화도로의 천도는 백성들의 피해가 막대함에도 불구
하고 최씨 무신정권의 이익을 지키려는 일로 보았다. 그의 문집으로는 『보
한집補閑集』이 있다.
무신정권 시대를 살아간 요세화상
「원묘국사비」에 의하면, 요세화상은 고려 의종毅宗 (재위 : 1146~1170) 17년
인 1163년에 합천에서 호장戶長의 아들로 태어나 12세에 강양江陽 천락사天
樂寺의 균정均定 화상에
게로 출가하여 천태교
관天台敎觀을 배우고, 23
세에 승과僧科에 급제하
여 천태학을 공부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대의
를 확철히 깨달아 명성
을 얻었다.
이 시절 의종은 아버
지 인종仁宗(재위: 1122
~1146) 때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려고 종래의 권력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하
여 측근세력을 키우고
사진 3. 원묘요세(圓妙了世(1163~1245). 무신세력과도 가까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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