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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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무로는  승
             려의 타락 사실을
             인정한  후  근세에

             만 왜 그것이 문제

             가  되었는지  묻고
             있다. 그가 도출한
             결론은 사회경제적
                                           사진 6. 폐불훼석으로 인해 파손된 석불.
             관점에서 사찰과 승

             려의 압력 행사를 제거하고자 한 세력이 폐불훼석을 일으켰다고 봤다. 폐
             불훼석에 이어 나온 상지령上知令을 비롯한 종교정책은 새 정부가 봉건제
             의 토지를 몰수하고 봉건적 체제를 폐지하기 위한 수순이었다고 설명했다.

               타마무로의 논리는 당시 젊은 연구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츠지의 연

             구성과를 수용하면서 사회경제사적 방법으로 다시 파악하고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증적 연구자인 츠지가 폐불훼석과 관련해 제시한 도덕
             적 판단을 타마무로는 영리하게 판단을 유보했다. 당시 대다수의 연구자

             들이 승려의 윤리를 폐불훼석과 연결했지만, 타마무로의 관심은 새 정부

             의 봉건제 폐지 방법에 있었다.
               그는 봉건제의 잔존에서 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근대 일본
             의 봉건적 제도와 싸운 강좌파 역사학과 유사한 면이 있다. 더해서 왕정복

             고나 폐불훼석이 “단순히 신도神道의 부흥이라는 국수적 아름다움은 아니

             다.”라고 언급해 당시 세력을 강화하던 황국사관과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타마무로가 사회경제사적 방법론을 종교사에 도입한 시도는 전후 역사학
             의 전개에서 간과된 면이 있다. 하지만 일본불교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

             법론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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