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3년 12월호 Vol.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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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다. 만약 참선하는 현장에 책과 지식을 끌어들인다면 그것은 겨우
덜어낸 언어와 생각을 다시 쌓는 일이 된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화두를 받
아 참선하는 수행자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한 법문을 베풀었지만, 책을 보
고 화두를 정한 수행자에 대해서는 거의 적대적일 정도로 냉랭했다. 그것
이 실참실수로 나아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사
정이 『성철스님 화두참선법』에 실린 수행자들과의 대화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성철스님은 책보고 화두하는 위험성을 들어 여러 방면으로 꾸짖
은 뒤 결론격으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책을 보고 했든지 사람에게 배웠든지 그런 건 안 묻는다 했
잖아. 사람에게 배우는 게 좋은데 그건 그만두고, 네가 지금 무無
자를 한다 하니, 내가 한번 물어 보고 싶은 건 조주가 어째서 무라
했는지, 그걸 한번 대답해 보라 이 말이야. 알겠어?…그건 네가 분
명히 모르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걸 분명히 모르니, 모르면
알아야 될 게 아니겠어? 그러니 ‘조주가 어째서 무라 했는가? 어째
서 무라 했는가?’ 그것만 계속 하란 말이야. 그럼 대강 알겠어?”
“조주가 어째서 무라 했는가?” 그것은 생각으로 알 수 없다. 책을 봐도
알 수 없다. 혹시 안다 해도 그것은 추측이고 억지해석이지 조주의 마음을
환하게 본 자리가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 완전히 깨질 때까지, 그리하여 스
쳐 지나가던 만사만물이 모두 입을 열어 불법을 설하는 깨달음이 올 때까
지 화두만을 계속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이 간화선의 실참실
오를 주장하면서 거듭 전하고자 하는 소식이 이것이다. 그것은 알고 모르
고의 문제가 아니라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가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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