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23년 12월호 Vol.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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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일이므로 우리는 구경각을
                                               ‘깨침’이라고 부른다. 이 순간
                                               모든 분별이 사라져 과거·현

                                               재·미래가 지금의 한 찰나에

                                               융합한다. 동서남북의 분별이
                                               사라져 지금의 이 한 지점에
          사진 3. 곤륜산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흐르는 황하.
                                               귀속된다. 이러한 ‘깨침’의 상
          황을 성철스님은 “황하의 물 거꾸로 흘러 곤륜산 정상에 이르고, 해와 달

          은 빛을 잃고 대지는 꺼졌다[黃河西流崑崙頂 日月無光大地沈].”고 표현했다. 만
          유인력의 질서가 무너져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풍경이다. 이것은 분별이
          사라져 만사만물이 평등불이하게 드러난 현장의 묘사에 해당한다.

           한편 이렇게 분별의 틀이 완전히 깨진 ‘깨침’의 자리에서 보면 허투루 지

          나치던 일상 속의 만사만물이 있는 이대로 부처의 드러남임을 알게 된다.
          새삼스러운 알아차림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새삼스러운 알아차림, 즉 ‘깨달음’으로 되살아난 풍경을 성철스님

          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했고, “문득 한 번 웃고 고개 돌려 서

          니, 푸른 산은 여전히 흰 구름 속에 있다[遽然一笑回首立, 靑山依舊白雲中].”라
          고도 했다.
           이러한 ‘깨침’ 혹은 ‘깨달음’은 앎과 이해의 차원을 벗어나 있다. 아니 앎과

          이해의 마지막 찌꺼기를 떨어내는 것이 ‘깨침’이고, 그리하여 앎과 이해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진정한 앎에 도달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해야 한다.
           참선과 깨달음을 불법에 대한 바른 이해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는 옛
          날에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특히 더해진 것 같다. 심지어 불교는 철학이

          지 종교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보게 된다. 학자들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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