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고경 - 2023년 12월호 Vol.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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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王維(699~761)는 『구당서』 열전에 전기가 실려 있어 잘 알려진 시인
입니다. 그는 날마다 십여 명의 스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담소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방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찻잔과 약탕기, 그
2)
리고 경전을 놓는 책상과 새끼줄로 엮은 의자뿐이었습니다.
왕유의 「신이오辛夷塢」입니다. ‘신이’란 자목련을 말합니다.
가지 끝 부용화(자목련꽃)
산속에서 붉은 꽃망울 터뜨렸네.
고요한 계곡에는 인적조차 없는데
꽃만 저 혼자 피었다 지네.
3)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어서 읽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이오」
가 노래하는 세계는 순수 인상의 표층 세계입니다. 물론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닙니다. 이 시에는 심원한 심층 세계가 있습니다.
이 시에는 자목련만 있고 인간, 즉 ‘나’가 없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저 혼
자 피었다 지는 자목련은 인간의 접근 방식 너머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
시의 밝은 개방성은 ‘나’가 없는 무아無我에서 솟아납니다.
왕유의 시는 저 혼자 피었다 지는 자목련이라는 표층을 통해서 고요함
과 무상無常이라는 심층 세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자신과 세상을 모두 잊
은 무아의 경계를 보여줍니다. 만 가지 생각이 다 가라앉은 고요한 심층 세
계를 자목련을 통하여 노래한 것입니다.
2) 『舊唐書』, 列傳 王維傳 : 在京師日飯十數名僧 以元談爲樂齋中無所有 唯茶鐺葯臼經案繩床而已.
3) 『全唐詩』 卷128 : (王維, 辛夷塢) 木末芙蓉花 山中發紅萼 澗戶寂無人 紛紛開且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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