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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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9호 | 거연심우소요 居然尋牛逍遙 39 | 다시 백련사의 이야기로 돌아오
만덕산 백련사 ③
면, 천인화상은 스승의 죽음 앞에서
제문을 지어 올렸으며, 스승의 부도
를 세웠을 때도 제문을 지었다. <원
백련사를 중건한 묘국사비>를 세운 후 기일에 제사를
영수 행호화상의 지낼 때에도 천인화상이 제문을 지
업적과 순교 어 올렸다.
백련사 원묘국사비와 부도림
정종섭
<원묘국사비>는 임진왜란 이후 비
신과 이수는 없어지고 하나의 돌로
된 지대석과 귀부龜趺만 남아 방치되
어 내려왔다. 조선시대 숙종肅宗(재위
1674~1720) 때 백련사의 탄기坦奇화
상이 절의 내력이 잊혀질 것을 염려
하여 성균관사성을 지낸 남악南岳 조
종저趙宗著(1631~1690) 선생에게 사적
비의 비문을 부탁하여 1681년에 <백
련사비白蓮寺碑>를 세웠다.
이때 지대석과 귀부의 돌은 그대
로 사용하고 비신의 돌은 새로 마련
정종섭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전 서울
대 법과대학 학장, 전 행정자치부 장관, 하여 비문을 새기고 그 위에 지붕돌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원장. 『헌법학 원
론』 등 논저 다수. 을 올려놓았다. 최근에 새로 세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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