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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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똑같으나 『벽암록』에는 백장유정이 훨씬 더 유명한 백장회해로 바
          뀌어 있고, 마조가 비튼 것도 귀가 아니라 코라는 점만 다릅니다. 보다 원
          형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조당집』의 들오리 문답입니다.




              어느 날, 마조가 사람들을 데리고 서쪽 성벽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
              는데, 갑자기 들오리가 날아갔다.
              마조가 말했다. “뭐지?”

              정 상좌(백장유정)가 대답했다. “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나?”
              “날아가 버렸습니다.”
              마조는 갑자기 유정의 귀를 잡아 비틀었다.

              “아악!”

              유정은 무심결에 소리쳤다.
              마조가 말했다. “아직 여기에 있네. 날아간 게 아니잖아.”
              유정은 확연히 깨달았다.       3)




           정말 재미있는 한 편의 콩트를 읽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는 선
          문답 가운데 가장 빛나는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평범한 일상적 대화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마지막 장면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뭐지?”, “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나?”, “날아가 버렸습니다.” 여기까

          지는 평범한 대화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귀를 잡아 비틀자 비명을 지르고,



          3)  『祖堂集』 卷第十五, 五洩章 : 有一日 大師領大衆出西牆下遊行次 忽然野鴨子飛過去 大師問 身邊什摩物
           政上座云 野鴨子 大師云 什摩處去 對云 飛過去 大師把政上座耳拽 上座作忍痛聲 大師云 猶在這裏 何
           曾飛 過政上座豁然大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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