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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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대학교에서 수학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을 때, 교수 연구실을 나와 혼자 교정 잔디
밭에 벌렁 누웠다. “여기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학
부 시절 참으로 오고 싶었는데, 스님이 되어 이렇
게 왔네.” 하늘은 맑고 고요했다. 학생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매우 오랫동안 그냥 그렇게 누워
있었다.
사진 5. 루이스 랭카스터 교
수. 사진 뉴시스. 당시 버클리대학에는 불교학 전공으로 유학 온
대학원 과정의 학생으로 조성택, 조은수 두 사람
이 있었고, 스님 두 분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들과 가끔 만남을 가졌다.
강옥구(1940~2000) 시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거의 매일 학교에 나가 강의를 들었다. 랭카스터 교수의 강의는 물론이
고, 제이니 교수의 남방불교 강의도 들었다. 학기 마지막 시간에는 해당 강
의에 대해 학생들이 평가서를 내는 제도가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제
도였다. 지금은 한국의 많은 대학에서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한국 관련 도서를 찾아보았더니 거의 한국전쟁에 관한
기록들이었고, 특히 한국불교에 관한 책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꼭 불교학
관련 논문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원 과정은 마쳤지만, 교수직에는
관심이 없어서 학위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이
후 논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학교 밖의 주변 지역들을 찾아다녔다. 한국 절
은 물론이고, 일본, 티베트, 중국, 미국 절들을 방문했다. 먼 곳에 있는 중
국 스님이 창건한 만불사에서는 하룻밤 자기도 했다. 유대인으로서 스님
이 된 분들도 있었고, 일본 선원에는 수행하는 백인들도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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