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P. 30
큰스님 열반 이후에 시작한 정심사 대웅전 건
립 불사는 사당동 정안사를 유지한 채 진행한 불
사여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서기 2천년에 많은
문중 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낙성식을 성대하
게 마쳤다.
나는 그 다음해 가을 9.11 사태 직후 뉴욕으로
떠났다. 주변에서는 미국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곳에 왜 가느냐고 물었다. 사람들
사진 7. 2011년 5월 부처님오신
날 정심사 대적광전에 이 무참히 저렇게 많이 죽었으니 독경讀經하러
서 법문 중인 원영스님.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묘운행 보살님의
주선으로 맨하탄에 머물면서 9·11현장도 둘러보았고, 조계사 묘지스님과
함께 사고 현장에서 독경도 했다. 또 조지아주 아틀란타의 신도 댁을 방문
했고, 전등사 절도 참배했다. 킹 목사의 기념관도 둘러보았고, 킹 목사의
무덤이 연못 가운데에 안치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스톤의 문수사에 들러서는 훗날 미국에 올 수 있도록 초청장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드렸다. 다시 센프란시스코에 들러서 이전에 익숙한 곳들을 두루 둘
러보니 매우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하여 약 한 달 동안 미국 여
러 지역을 두루 다녀보니 미국 와서 포교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정말로 미국에 가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주변
에서 모두 걱정을 했다. 그때의 내 나이로 보든지 혹은 정심사 운영이나 발
전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좋은 법당이 있고, 부처님
을 모시고 있고, 또 신심 깊은 신도님들이 있으니 괜찮다.”라고 했다. 결국
신도들의 대표자 모임에서 미국 가는 것을 후원해 주기로 결의가 이루어
졌다.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