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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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논도 몇 마지기 있고 밭도 여러 마지기가 있고 하니까 그거를 하고 또
신도들에게 시주도 좀 받고 그러면은 봉암사에서 살 만하다고. 그래서 거
기를 맡아 들어가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봉암사의 결사를 실제로 기획하고 준비했던 곳은 대승사라고 봐야 되
겠군요?
봉암사 결사 준비 과정으로 영산회
상도를 그린 곳은 대승사고요. 우리
가 실천할 때 중국 총림을 조금 본 따
기도 하고, 부처님 당시 기원정사를
회상하고 해서 그린 거지요. 그때는
대처승을 사판승이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에는 사판승이 없으니까 우리 뜻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우리의 이상을 한번 펴보
자 그런 곳이 바로 봉암사입니다.
사진 10. 성철스님과 청담스님.
그때 봉암사 생활할 때 하루 두 짐
씩 나무를 했습니다. 오전에 한 짐 또 오후에 한 짐. 산에 일꾼이 나무를 베
서 이만한 토막을 지어 놓으면 그걸 우리 몸에 맞도록 일꾼들에게 시켜서
지게를 수십 개 만들었어요. 그래서 지게에다가 각자 이름을 적었어요. 누
구누구의 지게다 하는 이름을 적어서 헛간에 둬요. 절에 들어가면 문간에
머슴들 사는 방이 있거든요. 무슨 글자인지는 모르고 그것을 신방이라 그
랬어요. 거기에 머슴도 살고 일하는 사람들도 살고, 그래서 봉암사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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