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9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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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등이요, 신라에 돌아온 이로는 앞에 서술한 북산北山의 도의와
남악의 홍척洪陟, 그리고 시대를 조금 내려와서는 대안사大安寺의
철徹 국사(혜철), 지력사智力寺의 문聞스님, 쌍계사雙溪寺의 소炤(혜소),
신흥사의 언彦(충언), 용암사湧巖寺의 체體(각체), 진구사珍丘寺의 휴休
(현욱각휴), 쌍봉사雙峰寺의 운雲(각운), 고산사孤山寺의 일日(범일), 양
조 국사였던 성주사의 염染(무염) 등인데, 선종인禪宗人으로 덕이 두
터워 중생들의 아버지가 되고, 또한 도가 높아 왕의 스승이 되었으
니 예로부터 이른바 ‘이름을 감추려 해도 이름이 나를 따라오고, 명
성을 피하지만 명성이 나를 따라온다.’라는 것이었다.” 4)
위의 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최치원은 ‘남척북의南陟北義’ 즉
서당지장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돌아온 도의와 홍척이 설악산(북산)과 지리
산(남산)에 자리를 잡고서 산문이 시작되었으며, 이어 대안사의 혜철, 지력
사의 문, 쌍계사의 혜소, 신흥사의 충언, 용암사의 각체, 진구사의 각휴,
쌍봉사의 각운, 고산사(굴산사)의 범일, 성주사의 무염 등이 산문을 열어 크
게 선을 떨쳤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내용 가운데 지력사의 문, (쌍계사의 혜소), 신흥사의 충언, 용
암사의 각체, 진구사의 각휴 등은 앞서 언급한 구산선문에 속하지 않은
사찰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최치원의 글은 신라말 산문의 모
습이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는 동시에 구산선문을 통
해 나말여초의 선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
게 한다.
4) 崔致遠撰, 『曦陽山鳳巖寺敎諡智證大師寂照之塔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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