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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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대흥산大興山 바위 꼭대기에서 발견하여 고운사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82년(성종 13)에는 안동 갈라산葛羅山 낙타사駱駝
寺의 석가여래불상을 가져와 대웅전에 봉안하였고, 1646년(인조 24)에는 주
지를 맡아 고운사의 사세를 일으킨 소영昭影 화상의 사리탑이 건립되었다.
이러한 것은 1729년(영조 5)에 평해군수인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1681
〜1752) 선생이 비문을 지은 「고운사사적비孤雲寺事蹟碑」와 1918년에 기록된
「등운산고운사사적騰雲山孤雲寺事蹟」과 그 해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 오치승吳
致昇과 조해수趙海壽가 세운 「등운산고운사사적비騰雲山孤雲寺事蹟碑」에 나오
는 내용이다. 신유한 선생의 「고운사사적비」의 내용은 선생이 고증한 것이
아니라 사적을 적어온 주지 정월회한淨月會閑 화상의 부탁을 받고 그에 의
존하여 지은 것이다. 여기에는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없는 것이
주목된다.
구름 운자가 들어간 네 개의 사찰
신유한의 「고운사사적비」에는 그 당시 문소현에는 ‘운雲’자가 들어간 네
곳의 사찰, 즉 서쪽의 운람사雲嵐寺, 북쪽의 고운사孤雲寺, 서북쪽의 주운
사住雲寺, 남쪽의 운곡사雲谷寺가 영남에서 빼어났는데, 그 가운데 고운사
가 제일이라고 했다. 동시에 고운사에는 조선 현종顯宗(재위 1659〜1674) 시
기에 극성克成 화상이 지은 가허루駕虛樓가 골짜기를 가로질러 공중에 지어
져 있다고 한 것을 볼 때, 현재의 가운루駕雲樓를 그때에는 가허루라고 부
른 것 같다.
그런데 1887년에 김시오金始五가 기록한 「고운사중수기孤雲寺重修記」에는
등운산에 신라 때 창건된 유명 사찰인 고운사가 있는데, 중간에 흥하고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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