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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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고운사의 중창불사는 승려들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민간인이나
관의 참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肅宗(재위 1674〜1720) 대인 1695년
에 아미타불상과 대세지보살상을 조성한 일도 도청道淸 화상과 선조禪照
화상이 자신의 재산을 희사하여 된 것이고, 대웅전의 중수도 승려들에 의
해 이루어졌다. 1724년(영조 원년)에 승려들이 모연募緣에 나서서 여러 당우
들을 지었고, 1728년에 운수암雲水庵이 중건되었다. 숙종 이후에는 승려들
이 개인적으로 전답을 소유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절에 시주하였고, 법손
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그 후 운수암은 승려들의 공부 공간이 되었고, 백
련암은 염불수행의 공간이 되었는데, 운수암은 그 후 화재로 소실되고 함
홍대사에 와서 다시 중건했다. 백련암이나 운수암에는 함홍대사가 지은 시
판이 걸려 있었다. 지금은 신축한 식당 건물의 현판에만 백련암의 이름이
어색하게 남아 있다.
이러다가 고운사에 관이 적극 참여하여 당우를 짓는 일은 1744년(영조
20) 영조英祖(재위 1724〜1776)의 어첩御帖을 고운사에 봉안하고 기로소耆老
所 봉안각奉安閣을 건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순조純祖(재위 1800〜1834) 대
인 1803년에 적묵당과 서별실이 화재로 소실되자 의성 현령의 지원과 국
가로부터 받은 공명첩空名帖으로 마련한 재원으로 중건하였고, 1835년
(헌종 원년) 초에 화재로 불타 버린 대웅전과 관음전 등 여러 전각들의 중
수도 현령이 주관하였다. 이 해 말에 운수암은 또 불타 버렸다. 고운사
당우들의 중건에 관이 적극 나선 것은 영조의 어첩과 기로소 봉안각이
들어선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1830년대에 엄격히 금지되
었던 사찰에의 전답 기부행위가 이루어진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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