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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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빙산사지와 5층모전석탑.
지 20결, 노비 10인, 상주하는 승려 10인을 두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도 빙
산사라고 불렸다. 자복사는 조선왕조의 출범 이후 태종 때인 1406년에 전
국 사찰의 토지와 노비, 승려의 수를 제한하고 11개 종파 242개의 사찰만
허용하자 이에 불만이 생겨나 추가로 88개 사찰을 선정하여 국가 인정 사
찰로 해준 것이다. 이를 보면 조선 초기에는 빙산사가 고운사보다 이 지역
을 대표하는 대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암괴들로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는 빙산 기슭에는 풍혈과 빙혈이 지금까
지 보존되고 있는데, 빙산사는 임진왜란 시기 의병장 권응수權應繡(1546
〜1608)의 군대에 쫓긴 왜군이 상주로 퇴각하며 저지른 방화로 소실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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