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P. 151
이 처참한 시대에 부서진 암자를 떠돌며 궁핍한 삶을 살던 조주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황량한 마을, 부서진 암자, 형언하기 어렵네
아침 죽 속에 쌀알이라곤 전혀 없으니
하염없이 창틈 사이 먼지만 바라보네
오직 참새 지저귀는 소리뿐, 인적은 없어
홀로 앉아 낙엽 지는 소리를 듣네
수행자는 애증을 끊는다고 누가 말했나
생각하노라면 나도 몰래 눈물 흐르네 3)
마을은 황폐해졌고 암자는 부서졌으며 죽을 끓일 쌀도 제대로 없었습니
다. 생활은 물론 종교도 문학도 현장이 빚어내는 산물입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과 폐불로 인한 사찰의 황폐화에 직면했을 때 승려들에게 요구
된 것은 진정성이었습니다.
그의 시는 인간 영혼에서 저절로 솟아 나오는 눈물을 불교적 질감과 감
촉으로 노래합니다. 부서진 암자에서 굶주린 삶을 살아내면서도 참새가 지
저귀는 소리와 낙엽 지는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눈물 속에서도 인생무상
을 담담하게 노래합니다. 조주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초개인적인
시대 정신을 노래한 것입니다.
3) 『趙州錄』, 十二時歌 平日寅, “荒村破院實難論 解齋粥米全無粒 空對閑窓與隙塵. 唯雀噪勿人親 獨坐時
聞落葉頻 誰道出家僧愛斷 思量不覺淚沾巾.”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