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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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헌강왕이 직접 찬술한 「심원
                                           사비」가 있다. 김입지의 비문은 약
                                           간만 남아 있고, 헌강왕의 비문은

                                           전하지 않는다. 또 『조당집』 17권

                                           「숭엄산 성주사 고 양조국사」 조에
                                           무염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무염은  속성은  김씨이고  태종

                                           무열왕의 8대 손으로 할아버지 때

                                           까지  진골이었지만  아버지  김범
                                           청金範淸은 득난 즉 6두품으로 강
                                           등되었다.  어머니는  화씨華氏로
          사진 1. 낭혜무념국사 진영, 창원 성주사 소장.
                                           긴 팔을 지닌 호법천인이 연꽃을

          내려주는 꿈을 꾸고서 무염을 잉태하였다고 한다. 9세 때에 공부를 시작
          하였는데 눈으로 한 번 본 것은 모두 암기하여 사람들이 해동의 신동으로
          칭송하였다.

           12세에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로 출가하여 법성法性의

          제자가 되었다. 오색석사는 도의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이때는
          도의가 귀국하기 이전이어서 도의와 관련짓는 것은 무리이다. 수년간 스
          승으로 모신 법성은 일찍이 당에 들어가 능가의 선법(혹은 소승불교)을 배워

          왔는데, 무염의 재주를 아껴 당나라 유학을 권한다. 이후 무염은 스승 법

          성을 떠나 부석사에 가서 석징石澄(혹은 석등石登)에게 『화엄경』을 배우고 821
          년에 배를 타고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배는 풍랑을 만나 흑산도로 되돌아 옴으로 말미암

          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부석사는 화엄의 중심 도량이었을 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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