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2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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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좀 펴게나 올빼미여, 이건 봄비가 아닌가
1814년, 평생 타향을 떠돌던 한 사나이가 오랜 싸움 끝에 아버지의 유산
일부를 상속하고 고향인 나가노현으로 돌아옵니다. 그의 이름은 고바야시
잇사, 나이는 52세입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이 다 빠져버린 늙은 잇사는
귀향하고 석 달 후 28세의 신부와 결혼합니다. 객지를 떠돌던 고달픈 생활
을 청산하고 젊은 아내와 함께 새롭게 출발하며 자신의 불우한 인생을 찰
싹 때리는 듯한 감촉의 시를 씁니다.
얼굴 좀 펴게나
올빼미여,
이건 봄비가 아닌가 4)
이 시의 앞 마에쿠前句에는 ‘비둘기가 말하기를’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
다. 그러니까 이 시는 비둘기가 올빼미에게 하는 말입니다. 말놀이 같기도
하고 가벼운 농담 같기도 하지만 읽으면 저절로 잔잔한 미소가 떠오릅니
다.
평생 가난에 찌든 얼굴을 펴 보고자 하는 잇사의 각오를 비둘기는 무심
한 듯 가벼운 말투로 툭, 던지고 날아갑니다. 이 가벼움이 잇사의 시에 깊
이를 더해 줍니다. 잇사가 노래하는 비둘기와 올빼미의 세계는 인간들 세
상보다 더 따뜻하고 친절합니다. 거기에는 인간으로부터 해방된 신선함이
있습니다. 잇사의 깨달음은 무슨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평범한 것으로
4) 小林一茶, 『七番日記』 : 梟よ面癖直せ春の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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