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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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3호 | 거연심우소요 居然尋牛逍遙 43 | 고운사도 여러 잡역을 부담하였는
등운산 고운사 ②
데, 특히 종이를 만들어 공납한 일이
눈에 띈다. 어람지御覽紙, 동지사장
후지冬至使壯厚紙, 팔대가책지八大家
고운사의 전각과 冊紙, 성균관삭지成均館朔紙, 장지壯紙
가람배치 등 최고급의 종이를 만들어 공납하
기도 했다. 이러한 것은 저상지楮上
紙인데, 이런 고품질의 종이를 만들
정종섭
어 공납할 정도였으면 보통 수준의
종이도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1802년에 경상감영에서 종이 값
으로 고운사에 지불한 금액이 128냥
인 것을 보면, 관청에서 공짜로 공납
을 받은 것은 아니어서 종이를 만드
는 일은 사찰 재정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품질 좋은 종이를 제조하였으
니 자연 선비들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도 맡게 되었을 것이고, 문집을 인
출하는 한지도 공급했을 것으로 짐
작된다.
1918년의 「등운산고운사사적비」
를 보면, 당시에 고운사는 사세가 번
정종섭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전 서울
대 법과대학 학장, 전 행정자치부 장관, 창하여 전각이 모두 366칸에 이르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원장. 『헌법학 원
론』 등 논저 다수. 고, 고운사에 출가한 강유문姜裕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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