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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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었는데, 그 후에 현재의 대웅보전이 있는 자리에 약사전이 세워졌다가
그 자리에 대웅보전이 신축되면서 현재는 그 뒤에 자리하고 있다.
고불전에 있는 석불이 약사여래불은 아님이 분명한데, 현재의 약사전의
석불상도 약사여래불의 모습은 아니다. 고불전의 다른 방에는 고운사에서
지고 있던 한지의 공납 부담도 줄여주면서 도와준 고을 현령 이용준李容
準에게 감사하는 철로 만든 공덕비가 서 있다. 이것을 보면, 옛날 고운사
종이 공납의 부담이 실로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서 볼 수 있듯이, 가람의 배치는 처음부터 치
밀하게 계획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전각들이
들어서고 또 허물어지고 다시 전각들을 세우는 것을 반복하면서 전체 가
람의 배치가 이루어져 왔다.
고불전을 지나 걸어가면 계곡 위에 무지개처럼 공중누각으로 서 있는 가
운루駕雲樓를 만난다. 고운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는 건물
이다. 그 옛날에는 계곡을 가운데 놓고 가허루와 우화루가 양쪽에 따로따
로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 현종 시기에 와서 계곡 건너편
에 있는 원래의 가허루는 없어지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공중누각으로 지은
것이 현재의 가운루라고 보인다. 그 기능으로 보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로
서 역할을 한 것인데, 다리 위에 집을 지어 누각처럼 되었다. 다리를 누각
처럼 지은 것으로는 송광사松廣寺 극락홍교 위의 청량각과 삼청교 위의 우
화각, 태안사泰安寺의 능파각, 경주의 월정교月精橋 등에서 볼 수 있다.
이 가운루는 영조 때의 신유한 선생이 사적비 비문을 지을 때에는 가허
루로 불렸고, 1887년 김시오의 중수기에 수광루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건
대, 그 이후 가운루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구름 위로 떠오른 수레라는 의
미인지 수레를 타고 구름 위로 오르는 니르바나nirvana의 경지를 의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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