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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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송원파의  허당지우虛堂智愚에
             게 사사했다. 8년간 수학하여 인
             가를 받은 후 귀국 후에는 규슈에

             서 법을 펼쳤다. 1304년에는 고우

             다 상왕의 초청을 받아 교토의 만
             수사 주지가 되었고, 1307년에는
             건장사에 돌아와 활동하다 그곳에

             서 입적했다. 후에 엔츠다이오(圓

             通大應) 국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오늘날 임제종 대부분은 그의 계
             통에 속한다.

               난포가 허당의 문하에서 어떻게

             수학했는지는  사료가  거의  없어
             불문명하다. 산재된 자료들에 의                사진 2. 난계도륭의 좌상,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해 단편만이 알려져 있다. 『엔츠다

             이오국사어록』(이하 어록)에서는 1265년 31세에 좌선 중에 대오했다고 한

             다. 허당은 “남포가 마침내 대철大徹했다!”고 외치며 당내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변방에서 온 승려가 깨달음을 얻자 대중들도 그를 보는 눈이 달라졌
             다. 남포는 확철대오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홀연히 심경心境을 함

             께 잊을 때, 산하대지는 기틀을 수려하게 벗는다. 법왕의 전신 전체가 현

             성하고, 시절의 사람은 서로를 대하여 서로를 모를 뿐.” 주객 미분의 상태
             에서 온 세계는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상대를 향한 분별 작용은 사라지고
             진여의 상태만이 남는다. 법신의 세계에 합일하여 진리의 작용을 온몸으

             로 체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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