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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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돼요. 우리 어머니가 혼자 살기 때문에 관
                                  청 일을 잘 몰랐지요. 고만 호적을 안 고치고
                                  놔뒀어요. 재판해야 되고 하니까. 그래서 내

                                  가 외갓집 성으로 창씨개명을 할 때도 외갓집

                                  은 스기야마 상이고 우리 청담스님 사촌들이
                                  네 명이 있습니다. 그 작은 아버지들은 마쓰
                                  야마 상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모하고 나하

                                  고 둘이 걸어가면 이모인데 이모는 스기야마
          사진 8. 일제 보통학교한문독본.
                                  고 내가 외갓집 성을 따랐으니까 나도 스기야
          마거든요. 친구들이 “너의 아버지 성을 따르지 왜 이모 성을 따르느냐?”
          고 그랬어요. 그런 말을 들어도 예사로 들었지 심각하게 듣지를 안 했습

          니다. 그때는 어리니까 부끄럽지도 않고요. 그랬는데 호적이 1년 당겨졌

          고 고치지 않아서 그렇고, 지금은 내가 독호적입니다.
           그때는 일제시대라서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전부 일본말로 배워서 일본
          말 상용 과정이라는 팻말을 상으로 줬는데, 그것을 집 대문짝에 붙이도록

          하는 정책을 썼거든요. 그래서 누구도 한국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학

          교에 들어가서 일본말을 어떻게 배우느냐 하면, 요만한 카드 열 장씩 줍니
          다. 그런데 한국말을 한 번 하면 카드 하나씩 뺏기게 되고, 나중에 성적이

          떨어져요. 나는 점수를 안 주고 그래서 열심히 배웠지요. 그래서 국어(일본
          말) 상용 과정에서 상을 타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일본말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어머니나 외할머니도 밤에
          야간학교를 나오라고 해요. 그래 나가면 마을 동회에서 일본말을 가르쳤
          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할머니도 능숙하게 하지는 못해도 일본말을 해

          서 우리 집도 국어 상용 과정이라는 상을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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