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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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생각들을 보고 들어서 안 것을 다시 표현시키거
             든요. 쭈욱 다 대중이 둘러앉아서 표현을 시키고 그러니까 오히려 불교사
             상이 꼿꼿하게 섰어요. 자립정신이 강화가 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리적으로만 하니까 옛날처럼 힘은 없지 않나 싶습니

             다. 제 나름대로 요즘 분들을 좀 낮춰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하고 요즘 스님들이 한 단체로 모여서 참선하고 거기에서 자기 소
             리가 나와야 됩니다. 경전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경전에 나오지 않는 자

             기 소리가 곁들여져야 힘 있는 소리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점이 현대에는

             좀 부족하다 싶습니다.


               ▶  성철스님이나 청담스님이 떠나실 때 결사체를 다시 조직하자는 기약

                  은 없었습니까?

               나는 봉암사 백련암에서 대중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승사 윤필암에 돌아
             왔어요. 그분들이 먼저 봉암사를 떠나셨는데 저는 그 사정을 모르고 있었
             습니다. 그리고 6·25가 터졌어요. 윤필암 누각에서 내려다보면 점촌에서

             전쟁하는 게 보입니다. 또 산에서 밤에 내려다보면 총알이, 빨간 불이 이

             쪽으로 쭉 가고, 또 저쪽으로 주르륵 가고, 총알 날아가는 게 다 보입니다.
               그때 빨치산들이 절에 올라와서 젊은 비구니들 다 데려간다는 소문이 났
             어요. 우리는 낮에 다락방에 올라갑니다. 장독을 놓아 계단을 만들었습니

             다. 마룻장 천장을 뚫고 이불을 올려다 놓고 자리 깔아 놓고 오르내리며 생

             활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젊은이들 여남은 됐는데 천장에 올라가고 노인
             들만 밑에서 생활합니다.
               바깥에 사람들이 오면 우리더러 숨으라고 그러고, 당신네들이 나가서

             맞이합니다. 사람들이 가끔 오거든요. 점촌 쪽과 대구까지 모두 점령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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