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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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 및 현상을 ‘5부류[位] 75가지[法]’로 분류하여 해석하는 유부의
불교 해석법은, 유부의 관점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불교 이해를 위한
문제의 유형과 범주를 설정하는 기본틀로 채택되곤 한다. 붓다와의 대화
에 유익한 길 안내가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탐구를 방해하는 결정적 장애
물이기도 하다. 붓다와의 새로운 대화를 위해서는 5위75법 해석 체계의 유
효성과 문제점을 원점에서부터 재성찰할 필요가 있다. 교학의 전통적 권
위에 매이지 않는 열린 성찰의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5위75법 해석 체계
의 토대가 되고 있는 ‘연기법에 대한 유부의 이해’는 비판적으로 재고할 필
요가 있다.
유부는 모든 ‘존재 및 현상[法]’을 ‘조건에 의해 형성되어 생멸 변화하는 시
간적인 유위법有爲法’과 ‘조건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 비시간적인 무위법無爲
法’으로 양분한다. 아울러 모든 현상의 이면에 있으면서 현상을 생성·소멸
시키는 ‘바탕 실체[基體]’이고 항상 존재하는 궁극실재[法體]를 설정한다. 그리
고 ‘시간에 연루된 조건인과적[緣起的] 궁극실재’로서 72종의 유위법有爲法을
분류하는 동시에, ‘시간과 무관하며 조건인과적[緣起的] 존재가 아닌 궁극실
재’로서 열반을 비롯한 3종의 무위법無爲法을 따로 분류한다. 그리하여 총
75종의 궁극실재를 설정하고 이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 체계
에서는 궁극실재[法體]를 ‘시간적·연기적으로 존재하면서 작용하는 유위
법’과 ‘비非시간적이고 비非연기적으로 존재하는 무위법’으로 양분하는데, 불
교의 궁극목표인 열반은 무위법에 배속된다. 열반은 ‘비非시간적이고
비非연기적인 독자적·항구적 궁극실재’라는 것이다. 1)
1) 불교에서는 시간이라는 실재가 있어 사물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현상을 시간이라는 단위
로 표현하는 것이라 본다. 그래서 변하면 ‘시간적인 것’이고, 변하지 않으면 ‘비시간적’이라 말한다. 유
부에서는 무위법인 열반을 ‘불변하는 것’으로 보므로 열반을 비시간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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