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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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제17대 까르마빠의 어린 시절(1992년도).         사진 5.  『까르마빠, 나를 생각
                                                        하세요』의 표지.

          잡은 출푸라캉(Tsurphu Lhakang)으로 제1대 까르마빠가 터를 닦은 도량이
          다. 제2대에 이르러 원나라 황실의 후원으로 중건되었으나 1410년의 지진
          으로 파괴되었다가 명나라 성조成祖 때 지금의 상태로 복원되었다.

           이 도량을 무대로 역대 까르마빠는 17대를 이어 현대까지 내려왔다. 하

          지만 1959년 붉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라싸의 민중봉기가 일어난
          격변기 때, 제16대 까르마빠 랑중 릭빼 도르제(1924〜1981) 는 달라이 라마
                                                          5)
                                                          6)
          일행과 함께 다람살라를 경유하여 바로 시킴의 룸텍사원 에 도착하여 망
          명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까르마빠의 ‘시간의 수레바퀴(Kala chakhra)’

          는 후일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게 되는데, 이런 상황은 아직도 진행형이
          어서 그 어느 누구도 유불리有不利를 따질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17대 까
          르마빠의 인도 망명을 말함이다.



          5)  룸텍사원을 재건하고 이곳에 묻힌 16대 까르마빠 랑중 릭빼 도르제(1924∼1981)는 동부 티베트 데게 지
           방 덴코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과 환경은 15대 까르마빠가 예언한 새로운 환생에 관한 유언장과
           딱 들어맞았다. 여덟 살에 출푸사원에서 흑모와 까르마빠 법복을 승계받고 대관식을 치른 그는 1941
           년부터 1944년 사이에 많은 시간을 사원의 확장에 힘썼다. 1954년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는 시킴과 인도를 방문하였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시킴 국왕 초걀 따시 남걀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
           고, 시킴 국왕은 그를 룸텍으로 초대하게 만들어 티베트의 중국화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6) 1996년 당시는 독립왕국이었던 시킴의 국왕 따시 남걀의 전폭적인 후원에 의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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