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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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자신이 입적할 날을 4년 전에
미리 예언하고, 입적 당일 밤에 제자들에
게 가사를 입히라고 한 다음 길을 떠나겠
으니 문을 열고 몸을 일으키라고 하고는
일어섰다가 다시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
다. 방산舫山 허훈許薰(1836〜1907) 선생이
<함홍선사비>의 비문을 지었다.
방산 선생은 구한말 의병장이었던 거
유 왕산旺山 허위許蔿(1854〜1908) 선생의
맏형이다. 형제들이 모두 의병운동에 진
력하였다. 허위 선생은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되는 불의에 분연히 일어나 전 사진 5. 함홍선사비.
국 의병연합군인 13도 창의군의 총대장
으로 전투를 치르다가 동대문 진격작전
으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하였다. 오늘날 서울 동대문의 왕산로旺
山路에는 그의 혈성血誠이 남아 있지만
지나가는 이들이 그 사연을 알고나 있는
지 모르겠다.
수월화상은 함홍화상의 맥을 이은 것
은 아니지만 은해사의 기성쾌선 화상의
7세손으로 그의 법맥을 이은 고승이다.
그는 교학보다는 염불수행과 대비주大悲
呪를 중심으로 한 진언을 더 중시하였다. 사진 6. 수월선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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