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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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로서 살아가는 나의 실존적 관심사항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에 의승義僧들의 전쟁 참여와 공로로 불교의 위상이 다소
             인정받는 분위기에서 고운사도 중창을 하면서 사세가 점차 회복되고 번창

             하여 갔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함홍치능涵弘致能(1805〜1878) 화상과 수월영

             민水月永旻(1817〜1893) 화상이 주석하면서, 고운사는 경북지역에서 교학과
             선의 중심사찰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19세기 고운사를 대표하는 고승 함홍화상



               함홍화상은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즉 서산대사의 법통을 이은 풍
             담의심楓潭義諶(1592〜1665) 대사의 맥을 이어온 19세기 고운사를 대표하는 고

             승이었다. 함홍화상은 고운사에서 출가하여 소요태능逍遙太能(1562〜1649)

             대사의 법맥을 이은 은해사의 혼허지조混虛智照(1829〜1878) 화상에게서 교
             학을  배우고,  부휴선수浮休善修(1543〜1615)  대사와  회암정혜晦庵定慧(1685
             〜1741) 대사의 법맥을 이은 팔봉승휴八峯勝休(1777〜1853) 화상에게서 수학

             하였다.

               팔봉화상은 총림의 모범은 함홍화상에
             게 있다고 할 만큼 그의 뛰어난 경지를 인
             정하였다.  함홍화상은  선보다는  교학에

             무게 중심을 두었고, 젊은 나이에 유학을

             공부한 높은 식견으로 주위 사족들과도
             활발하게 교유를 하였다. 함홍화상의 문
             집인 『함홍당집涵弘堂集』에는 그가 남긴 많

             은 시와 팔공산, 은해사, 운부암, 백흥암,               사진 3. 함홍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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