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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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고산정사 앞 암산과 미천.

             후 관로에 나가 지내다가 영조시대에 노론과 소론이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중앙 정치의 혼탁한 모습을 보고는 고향으로 돌아와 대석산大夕山 아래에

             마련한 대산서당大山書堂과 고산정사高山精舍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의 양성
             에 매진하였다. 일찍이 퇴계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사간원 정언, 사헌부 감
             찰, 예조 참의, 형조 참의 등 여러 차례 제수된 벼슬들을 모두 사양하고 큰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시험으로만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의 폐

             단을 비판하고 잘 만들어진 교육제도를 통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방안을 제
             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시대, 1759년 가을날 대산선생은 고운사에서 문도들과 모여 『대

             학大學』과 『논어論語』를 강론하기도 했고, 1761년(영조 37) 가을에는 문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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