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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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한 논문을 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
喜(1786〜1856) 선생은 내친김에 진흥왕
릉에 대해서도 짧은 논문을 썼다. 그
에 의하면 경주 서악마을에 4기의 고
분군이 있는데, 문헌에 나오는 서악리
西岳里, 영경사永敬寺의 북쪽, 공작지孔
雀趾라는 곳이 모두 서악리를 지칭하
는 것이고, 이에 24대 진흥왕, 25대 진
지왕眞智王(재위 576〜579), 46대 문성왕
사진 3. 경주 서악동 고분군. 사진: 경주시.
文聖王(재위 839〜857), 47대 헌안왕憲安王
(재위 857〜861)의 능이 있다고 했으니, 개별적으로는 특정할 수 없으나 4기
의 고분을 이들 왕의 능이라고 보았다. 문성왕과 헌안왕이 29대 태종무
열왕의 후대 왕임에도 위치상 어떻게 그 위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에 대해서는, 후대의 묘를 선대의 묘보다 위에 쓰는 도장법倒葬法은 나중
에 와서 금지한 것일 뿐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과 같은 산기슭이
라고 하지만 4기의 고분은 방향이 무열왕릉과 우측으로 비껴 있고 또 간
격도 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법주사는 창건 이래 미륵 법상도량法相道場으로 그 역할을 해왔는데, 법
상종法相宗에서는 유식사상唯識思想과 미륵신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신
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 활동한 백제 유민인 진표眞表(717〜
733) 율사에게서 그 법을 전수 받은 영심永深(?〜?) 화상이 무열왕계의 마지
막 왕인 제36대 혜공왕惠恭王(재위 765〜780) 때 진표 율사가 점지해 준 지금의
법주사 자리에 사찰을 창건하고 법상종의 도량을 열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하여 8C 후반기부터 9C 전반기에 진표계 법상종이 펼쳐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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