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P. 156

의 아들로 작은 아버지인 법흥왕을 이어 왕이 되었다. 신라에서는 법흥

          왕 때 병부兵部를 설치하고 율령을 반포하였으며, 중국 남조南朝의 양梁
          (502〜557) 나라에 사신을 보내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금관가야

          金官伽倻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528년(법흥왕 15)에는 이차돈異
          次頓(506〜527)의 순교로 불교를 처음으로 공인하였다.



            6세기 중후기의 정세와 불교




            신라 최초의 왕실 사찰인 흥륜사興輪寺(고려시대 몽골군의 침략으로 소실)
          를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다시 지어 544년(진흥왕 5)에 완공하고 사람들
          의 출가出家를 허락하였다. 진흥왕은 549년(진흥왕 10) 양나라에서 사신과

          신라 최초의 중국 유학승인 각덕覺德(?〜?) 화상을 신라로 파견하면서 붓
          다의 사리를 보내왔을 때 백관들과 함께 흥륜사 앞에서 이를 맞이하기

          도 했다. 양나라는 남북조시대에 북쪽의 동위와 서위와 경계를 하고 현
          재 중국의 남쪽 반을 모두 차지한 거대 왕조였는데, 이 당시에는 무제가

          불교에 너무 빠져 있어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고, 급기야 갈족의

          공격을 받아 수도 건강이 함락되고 무제는 사로잡히고 일가친척은 갈족
          의 노예로 전락하는 극도의 혼란기에 빠져들었다. 결국 선비족 군사들에



            사진 2. 경주 황룡사지 9층목탑 심초석과 주춧돌.













          154                                                  『고경』 제137호
   151   152   153   154   155   156   157   158   159   160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