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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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표 율사와 점찰법회



            『삼국유사』에 의하면 완산주 만경현=벽골군 출신의 진표 율사는 12살

          때 당시 당나라 선도善道=善導(613〜681) 삼장에게서 공부하고 오대산五臺
          山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로부터 5계戒를 받은 도당 유학승 순제順濟=崇濟

          (?~?) 화상이 주석하고 있던 금산수金山藪로 찾아가 배우고, 순제 화상의
          가르침에 따라 전국을 다니며 수행하였다.

            나중에는 자신이 창건하고 점찰법회를 열며 7년간 주석하던 금강산
          발연사鉢淵寺에서 나와 23세 때인 740년(효성왕 4)에 부안의 선계산仙溪山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참회를 하면서 피가 나도록 팔다리를 바위에
          찧는 등 신체를 학대하는 고행苦行을 하다가 급기야 바위에서 몸을 던지

          는 망신참회亡身懺悔(일찍이 싯다르타는 이런 고행을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를 한
          끝에 살아나 762년에 지장보살地藏菩薩로부터 계戒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처음부터 뜻을 둔 미륵보살彌勒菩薩의 행으로 나아가 변산

          邊山의 영산사靈山寺에서 용맹정진한 끝에 미륵보살(보살인 동시에 붓다인 존
          재)로부터 『점찰경占察經』 2권과 길흉을 점치는 패인 189개의 간자簡子=선

          자銑子 가운데 8간자와 9간자를 받았는데, 이는 미륵보살의 손가락뼈로
          만든 것이었다. 이를 불자간자佛子簡子라고 했다. 그 이후 진표 율사는 금
          산수로 돌아와 주석하면서 법을 베풀고 계를 널리 펼쳤는데, 이로써 풍

          속과 교화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극단적인 신체 학대를 하는 참법 수행이나 미륵보살과 문수보살의 현
          현, 미륵보살의 손가락뼈 등의 이야기는 기이奇異하고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기록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금산사는 766년 혜공왕 2년에 진
          표 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순제 화상이 머문 때에도 금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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