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P. 165
이 생겨났다. 비록 구산선문에는
속하지 못했지만 앙산으로부터 법
을 전해 받고 귀국하여 오관산문
을 개창한 요오순지了悟順之에 주목
하지 않을 수 없다.
순지에 관한 기록은 「개풍 서운
사 요오화상 진원탑비문」이 있고
『전등록』 권12에 ‘신라 오관산 순지
順支대사’ 조목이 있다. 그의 비문
은 고려 태조 20년(937년)에 경기도
사진 1. 개성 서운사 요오화상비 탁본. 개풍군 영남면 서운사瑞雲寺에 세
사진: 불교신문.
워진 것으로, 찬자의 이름은 마멸
1)
이 되어 있고, 본문과 음기가 수록되어 있다. 주목되는 것은 『조당집』 권
20에 실린 ‘오관산五冠山 서운사화상瑞雲寺和尙’조로 여기에는 비문보다 더
상세하게 순지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조당집』에 실린 신
라 승려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고려인에 의하여 『조당집』이 20권으로 새롭게 편찬되는 과정에서 순지의
선사상에 크게 주목하였던 것이다.
순지順之의 정확한 생몰년은 알 수 없지만, 평안도 패강浿江(현 대동강)
지역 출신으로 속성은 박朴씨이며, 어머니는 소昭씨이다. 지방 호족 출신
의 순지는 약관의 나이에 오대산으로 가서 삭발하고, 속리산에 가서 구
1) 이 비문의 내용은 『조선금석전문』에 수록되어 있으며,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고려편 Ⅰ)』에
원문과 번역문이 실려 있다.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