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4년 9월호 Vol.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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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多聞天王의 별명이기도 하다. 한 손에 탑塔을 받들고[托] 불법을 수호한

          다는 뜻이다.
            이 탁탑천왕이 수하의 거령신巨靈神을 선봉으로 내보내 손오공의 요새

          를 공격할 것을 명한다. 거령신의 힘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크기에서 나
          온다. 우주를 채우는 크기를 가지고 위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

          것은 모든 것을 압도하는 큰 하나(One)가 있다는 관념의 형상화이다. 그러
          나 크기로 압도하는 이 전략은 실패하고 만다. 억누르면 일어나고, 없애

          려 하면 되살아나는 것이 자아의식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절대적
          하나라는 관념으로 압도하려던 거령신은 머리가 깨져 달아나고 만다.

            거령신이 머리가 깨져 돌아오자 탁탑천왕은 아들 나타태자哪吒太子를
          출전시킨다. 그는 수량으로 몰아붙이는 전략을 취한다. 나타태자는 머리

          가 셋, 팔이 여섯 달린 모습으로 변하여 여섯 가지 무기를 휘두른다. 그
          의 무기는 거의 무기박람회 수준이다. 베는 검, 자르는 칼, 포승줄, 방망

          이, 철퇴, 불 바퀴가 그것이다. 검으로 찌르고, 칼로 베고, 줄로 묶고, 방
          망이로 때리고, 철퇴로 내리치고, 불 바퀴로 뭉개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손오공은 머리 셋, 팔 여섯으로 변신하여 여의봉 여섯 자루를 휘두르며

          상대한다. 나타태자는 오로지 많음에 치우쳐 있지만 손오공은 많음과 하
          나가 통일된[一卽多 多卽一] 관계에 있다. 따라서 오직 많음으로 압도하려던
          나타태자는 승산이 없다. 이에 나타태자 역시 일패도지하고 만다.

            수량으로 공략하려는 나타태자의 전략은 두 가지를 상징한다. 우선

          그 무기들은 다양한 현상에 대한 집착을 상징한다. 궁극적 실재가 따로
          없다면 다양한 현상들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면 되지

          않겠는가? 부처님 당시에도 실제로 이렇게 추구하는 쾌락주의적 구도자
          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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