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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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을 받아들인 것입니다.처음은 사념(思念)을 쉬고 6진(六塵)
            을 쉬는 것이며,다음은 대상[境]과 인식작용[智]이 모두 고요하

            게 되는 것입니다.따로 세워 놓은 관심십문(觀心十門)은 아주
            현묘(玄妙)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깊이 통달할 수 있도록 했
            습니다.

               그러나 달마스님만은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서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밝히도록 했을 뿐입니다.마음이 밝아지기만 하면,마치

            주인이 자기 집에 돌아와 마음대로 활동하듯이,복잡하게 여러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으니 모두 이런 이유에서입니다.달마스님
            이 제자 신광(神光)스님을 가르칠 때에,‘밖으로는 모든 반연을

            끊고,안으로는 마음의 헐떡임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올바른 방법을 찾은 것이니라’라고 했을 뿐,그밖에 다른 말을

            하셨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정말로 마음속에 깨달은 바
            가 있는 사람이라면,점수(漸修)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소리
            는,달마스님의 바로 가리키는 선[直指之禪]과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오를 어찌 영가스님만이 범했겠습니까!천태스님의 3
            관(三觀)과 현수스님의 화엄 4법계관(華嚴四法界觀)도 이 마음의

            지극한 이치를 언어적인 이론으로써 자세하게 풀어놓은 것입니
            다.비록 과거의 부처님이 다시 세상에 오시더라도,이 두 스님

            들보다 마음의 법을 이론적으로 자세히 밝혀놓지는 못할 것입니
            다.아무튼 달마스님과 다른 점은 대체로 언어적인 이론을 사용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입니다.즉  원각경(圓覺經) 에서는 3

            관(三觀:사마타止,비바사나觀,선나禪)으로 25방편[二十五輪]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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