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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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동쪽,서쪽,혹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달리 말하게
됩니다.그러나 보름달이 허공에 뜨면 실로 ‘동쪽이
다’,‘서쪽이다’하는 것도 결국은 움직이지 않는 원래
의 자리를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쿵저러쿵 공안에 대하여 서로 다른 말이 생긴
이유는 법(法)의 근원을 확실히 깨치지 못했기 때문입
니다.그렇기 때문에 보는 상대방에 따라 허공의 크기
와 모양이 달라진다는 비유도 생기게 되었습니다.깨
달은 선배 종사(宗師)들이 공안을 설명할 때에 혹은
생략하기도 하고,혹은 강조하기도 했습니다.그렇다
고 언어로 설명하는 본뜻이 혀끝에 있지 않다는 말로
써 증거를 삼아 서는 안 됩니다.자기의 수준에 맞게
한 기연,한 경계 위에서 이해한다면 종․탈․역․순
(縱奪逆順)으로 종횡무진하게 설명하는 정안종사의 말
씀에 끄달려 가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이렇게
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치를 극진히 깨닫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안은 비록 하나의 도리이기는 하나 각각
공안의 차이는,사람이 바다에 들어갈 때 들어가면 갈
수록 더욱 깊어져서 계속 들어가면 밑바닥까지 도달
하는 것과 같습니다.도달하고 나서 홀연히 왔던 길을
되돌아보면,바로 이것이 바다였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그러나 그 깊은 곳에 몸소 도달해서 한번 뒤
돌아보지 않는다면,가슴속의 의심덩어리가 약속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