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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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날엔가 홀연히 신심(信心)을 일으켜 똑바로 공안을
참구(參究)하기만 하면 명확하게 깨닫는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오직 총명하고 영리하기만 하여 머리 속에서만 미
리 알아 버린 사람은 절대로 다시는 올바른 믿음을
내어서 명확하게 깨닫지 못할 겁니다.요즈음 총림에
서는 속히 제자를 얻는 데만 급급하며 제자들이 총명
하고 영리해질 때까지 기다려 주지를 않습니다.스승
된 자들은 책자를 쥐고 화두 하나를 던져 주어 마치
어린아이로 하여금 어른과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그
들이 이해를 하고 그들의 자질이 깊고 묘해지기를 바
라지만,이것은 마치 그물 속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가득 차게 하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진정한 선객[本色道流]은 이와 같은 나쁜 독약을 먹
으려 하지 않습니다.어쩌다 고금의 기연을 만나더라
도 절대로 이리저리 따지려 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단박 깨우쳐 생사의 바른 뜻을 꿰뚫어 버립니다.마치
눈앞에 수만 길이나 되는 장벽이 서 있는 것처럼,오
래도록 공안을 참구하다가 홀연히 의심덩어리를 타파
합니다.그러면 백천만 가지 공안의 심천(深淺)․난이
(難易)․동별(同別)이 한꺼번에 뚫려서 자연히 남에게
묻지 않게 됩니다.
가령 마음의 눈이 아직 열리지 않았는데도 자기 자
신에게 되물어 참구하려 하지 않고 끝내 남들이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