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선림고경총서 - 02 -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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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房夜話 中 61


            진심(眞心)을 잃지 않고 참다운 수행을 어김없이 해서 모두 스
            스로 깨달아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했던 것입니다.

               달마스님이 중국으로 오고 백장(百丈)스님이 탄생하기 이전
            에 우두(牛頭)스님이 옆으로 한 가지 나와 남북종(南北宗)양파
            로 나누어졌습니다.그 영향으로 수행자들은,허리에는 낫을 차

            고 어깨에는 삽을 걸치고는 화전(火田)으로 나가 농사를 지어
            직접 밥을 짓고 절구질을 했으며,너절한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

            을 하였습니다.철석같은 신심(身心)과 빙상(氷霜)같은 신념으
            로 불조(佛祖)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한 어깨에 걸머졌습
            니다.그래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았습니다.모두가 가

            야 할 곳을 스스로 갔기 때문에 도달한 곳이 언제나 정확했던
                                                         9)
            것입니다.그 당시 어느 곳에 5산10찰(五山十刹)같이 으리으리
            한 거처와,3현(三玄)이니 5위(五位)니 하는 특이하고 복잡한 이
            론과,방(放)․수(收)․살(殺)․활(活)의 구별 및 염(拈)․송(頌)
            ․판(判)․별(別)같은 복잡한 이론이 있었겠습니까?

               원래 흠집이 없는 옥(玉)은 갈고 닦지 않아도 되는데 무슨
            연장이 필요하겠습니까?안목이 처음부터 올발랐던 것입니다.
               백장(百丈)스님이 총림(叢林)을 건립한 이래로 광대한 전답과

            큰 집은 많아졌지만,수행하는 자세는 퇴보하여 잘못과 허망이
            도리어 늘어났습니다.그 결과 쓸데없는 기강만 날로 번거로워

            졌고,실제로 예의는 나날이 사라져 갔습니다.이러한 상황을 이
            미 수백 년 전에 선풍(禪風)의 진면목을 제창하신 임제(臨濟)․


              9)5산10찰(五山十刹) 徑山 萬壽寺,阿育王山 廣利寺 등 南宋代 국가 권력의 보호
               아래 있던 선종의 명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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