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선림고경총서 - 04 - 치문숭행록
P. 70

70 치문숭행록


             었다.강의를 들으러 갈 때면 스님은 항상 짐을 지고 다녔는데
             한 어깨에는 어머니를,또 한 어깨에는 경전․종이․붓을 꾸렸

             다.공양시간이 되면 어머니를 나무 아래 앉혀 놓고 마을로 들어
             가 걸식하였다.



                6.우물을 파서 아버지에게 보답하다[鑿井報父]


                당(唐)대 혜빈(慧斌)스님은 연주(兗州)사람이다.늙으신 아버
             지가 조정에 계시므로 효도하고 공경할 길이 없었다.이리하여

             문수(汶水)남쪽 여러 갈래 길이 교차하는 곳에 의정(義井)이라는
             우물 하나를 만들어 부친의 은혜에 보답하고,비를 세워 명(銘)을
             새겼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저무는 황혼에 근심은 큰데
                자식을 볼 기약 없어라.
                인생 백 년이 몇 날이나 되던가.
                이를 마주하고 길이 슬퍼하노라.



                7.탑에 예배하여 어머니를 구제하다[禮塔救母]


                당(唐)대 자린(子鄰)스님의 아버지는 범씨(范氏)이고 어머니는
             왕씨(王氏)였는데 3보(三寶)를 믿지 않았다.자린스님은 동도(東

             都)로 도망하여 광수사(廣受寺)경수율사(慶受律師)에게 출가하였
             다.그 뒤 홀연히 어버이가 생각나서 문안을 드리러 갔더니 아버
             지는 실명(失明)하여 앞을 못 보고 어머니는 작고한 지 3년이나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