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선림고경총서 - 05 - 참선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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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의정을 일으킨 납자에게 주는 글 111
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들은 번뇌가 끊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
무지 모르고 있다.설사 이들이 진리를 깨달았다 해도 그것은 알
음알이일 뿐이니,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은 온몸 그대로가 병통
이지 선은 아니다.이렇게 된 이유는 깨달음이 깊지 않은 데다 너
무 조급하게 범부에서 성인으로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가 깊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쓸 수가 없다.그
러니 활구(活句)를 얻고서 물가나 숲 속에 들어가 공부한 것을 잘
간직[保任]하는 것은 좋다 하겠으나 조급하게 앞으로 나아가 남을
위한답시고 부질없이 잘난 체해서는 안 된다.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처음 공부할 때 의정이 일어나 한 덩어리로 뭉쳐지게 되면
오직 그것이 저절로 열리기를 기다려야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는 사실이다.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무슨 이치를 보았다 해서
곧 의정을 놓아버리고 그 속에 눌러앉아 죽어도 그곳을 떠나지 않
고 끝내 깨닫지 못하면 일생을 헛공부한 것이다.그렇게 되면 겉
으로는 참선하는 납자라 해도 실제로 참선한 내용은 없다.비록
번뇌를 떨쳐 버렸다 해도 다시 선지식을 만나 보는 일은 나쁠 것
이 없다.선지식이란 분들은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중병을 거뜬히
고쳐 내고,또 큰 공덕주여서 능히 마음먹은 대로 베풀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이만 하면 되었겠지 하는 생각으로 선지식을 만
나 보려 하지 않아서는 절대 안 된다.선지식을 만나 보려 하지
않고 자기 견해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선 가운데 이보다 더한 병통
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